구체적 액수·시기·방법 등은 안 밝혀
홈플러스 정상화 위해 필요자금 1조원 이상 추산
"지원 대상에 소상공인 한정한 것도 한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3/222387_228219_582.jpg)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최근 사태 해결을 위해 사재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정치적 압박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사재 출연 규모와 시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알맹이가 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홈플러스 회생절차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김병주 회장은 특히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홈플러스는 "주주사에서 자금사정이 어려운 소상공인들의 채권을 조속히 지급할 수 있도록 홈플러스에 재정지원을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현재 소상공인 채권 지급에 필요한 소요 금액을 추산하고 있다"며 "집계가 완료되는 대로 주주사와 실무협의를 통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소상공인들의 채권 지급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홈플러스 노조)는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 압박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며 경영진의 책임있는 대책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김병주 회장은 홈플러스 사태가 심각해지고 국회의 출석 요구, 국세청 세무조사, 노동조합의 반발 등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사재 출연이라는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진정 어린 사과도 없이 해외로 출국한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홈플러스 강서 본사 이미지. [홈플러스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3/222387_228220_5817.jpg)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은 이번 사재 출연 발표가 단순히 여론을 달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홈플러스 사태가 심각해지고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MBK가 급하게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회 출석을 요구받은 김병주 회장이 출석을 회피하고 선심 쓰는 듯한 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MBK는 홈플러스 인수 후 1조원 투자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자본 회수에만 매달려 (회사) 경쟁력이 약화했다"며 "선제적 기업회생이라는 생소한 개념까지 동원해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떠넘기는 '신개념 먹튀'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강 위원장은 "김병주 회장이 진심으로 책임을 느낀다면 국회에 출석해 직접 대답하고 노동조합과 만나 직원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며 "MBK 탐욕으로 인한 경영 실패를 인정하고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충분한 사재 출연과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병주 회장은 오는 18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홈플러스 관련 현안 질의의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MBK의 투자가 완료된 개별 회사(홈플러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유서를 내고 출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출연 계획에 구체적인 액수를 명시하지 않은 것도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급조 계획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채권 지급 대상을 '소상공인'으로 한정해서 발표하면서 실제 홈플러스에 필요한 수준보다 낮은 규모로 지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대략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재 출연 계획이 진정성이 있는 결정이었다면 당사자가 직접 대중 앞에 나와 발표하고, 질문도 받았을 것"이라며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형식으로 봤을 때 미봉책에 불과한 수준의 사재 출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말 기준 홈플러스의 순운전자본은 -8753억원이다. 순운전자본(Working Capital)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기업의 단기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통상 유동자산(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에서 유동부채(1년 내 갚아야 할 자산)를 빼는 방식으로 산출한다. 순운전자본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1년 안에 현금으로 유입되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홈플러스 재무·영업 정상화의 첫 단추인 순운전자본을 플러스(+)로 돌려놓기 위한 8000억원대 자금은 필수적인 액수인 셈이다.
여기에 단기 채무 상환을 위한 추가 유동성 공급도 필수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3일 기준 홈플러스 기업어음(CP)·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단기사채 등 단기채권 판매 잔액은 5949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개인 투자자에게 팔린 게 2075억원(676건)이다. 단기 채무 상환은 홈플러스가 존속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를 종합하면 홈플러스의 전반적인 재무 구조 개선과 유동성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최소 자금만도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김 회장의 사재 출연 규모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지급해야 할 금액을 홈플러스와 협의하면서 파악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규모가 결정될 것"이라고만 밝혔다. 시장에서는 1조 원대 사재 출연을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한참 액수가 적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MBK가 사재 출연 기준을 소상공인 거래처 결제 대금으로 제한하면서 출연 규모가 3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회장의 개인 자산 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적은 없으나 2023년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김 회장을 한국 최고 자산가로 선정했다. 당시 포브스는 김 회장의 자산이 97억 달러(당시 약 12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