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지금과 같은 국정감사 시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하면서 금 보유고를 도마에 올렸다. 금값이 크게 떨어지던 때라 '한국은행의 잘못된 금 투기'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김중수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외환보유액을 달러로만 보유해서는 위험하므로, '자산 다변화 차원'에서 2011년부터 2년간 90톤의 금을 사들인 것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약 11억 달러의 평가손실이 우려된다는 '현실적(?)' 이유로 정치인들은 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김현미 당시 민주당 의원의 지적이 매서웠다. 그는 김 당시 총재를  '금(金)을 사랑한 총재'라고 지칭하면서, 한국은행이 금 가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국가적 손실'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DJ가 특히 아꼈다는 평화민주당의 젊은 당직자 출신, 김 전 의원의 그런 비판은 기분 상하기 보다는 듣는 이에게 민주당 계열 전반을 적으로 삼는 듯한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부대변인 시절부터 여러 인상적인 논평들로 지지자들을 열광시켰고, 상대 당에 절대 밀리지 않는 '화력'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그런 그가 금을 사랑한 총재라며 정조준했으니, 한국은행 측의 속상함은 짐작 못할 바 아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그는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국회의원을 여러 번 역임한 데다 DJ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후광을 누려 오래도록 실세로 평가됐던 인물이다. [사진=국토교통부]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그는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국회의원을 여러 번 역임한 데다 DJ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후광을 누려 오래도록 실세로 평가됐던 인물이다. [사진=국토교통부]

김 전 의원은 이후에도 승승장구, 결국 문재인 정부의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역임한다. 다만 말로가 좋지 않았다. 집값 앙등으로 비판이 비등해서다. '아파트를 빵 굽듯 구워서라도 해결이 된다면 밤새 굽겠지만...' 해명으로 그렇잖아도 화난 민심을 격앙시겼고, 결국 '윤석열 정부 집권'에 기여했다는 평마저 듣는다.

실현되지도 않은 평가손실로 정도 이상의 비난을 받자 '금을 사랑한' 김중수 당시 총재는 물론 후임 한국은행 수뇌부들도 이후 금 매입을 중단해 버렸다. 2013년 국정감사 후 어느새 12년, 띠가 한 번 돌았지만 금 보유량은 그 시절 그대로다. 아마 팔아버릴 의욕도 같이 잃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작금에 금값이 오르자 한국은행은 왜 자산 다변화를 진작 하지 않았느냐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대단히 늦은 이야기다. 강현기 DB증권 연구원은 금값을 다룬 한 분석에서 "금 가격의 상승 가속화는 이미 2022년 중반부터 감지됐던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그때부터 미국에선 고금리 영향에 경제 주체들이 위축, 경기선행지수가 하락세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한국은행 금 투자에 대입해 보자. 사려면, 이미 늦어도 3년 전부터 이런 조짐을 총명하게 읽은 뒤 과감히 베팅을 하자며 내부 논의와 결재가 이뤄졌어야 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13년 김현미 쇼크는 그런 무거운 사명감을 굳이 감당해야 하느냐는 회의감의 씨앗을 뿌리기 충분했다.

김 전 의원이 한국은행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국정감사 시즌에는 기술금융 대출이라는 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지적이 이 분야에 천착해 온 금융기관들을 서운하게 했다. 

기술금융은 담보력이 부족하지만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4년부터 금융당국과 전 은행권이 공동으로 추진해 온 정책금융 프로그램이다. 간단히 말해 기술력은 있지만 담보 등이 부족한 곳에 대출을 정책적으로 해주는 것이다. 

이 의원 지적은 "지난해 기술신용평가 제도를 개선했음에도 부실한 기업에도 무분별한 대출이 이뤄져 부실 처리되는 금액이 매년 늘고 있다"는 논지인데, 위험한 상품을 취급하면서도 노력이 부족해 은행 주주들에게 폐만 끼치는 것으로 읽힐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이양수 의원실]
[사진=이양수 의원실]

기술금융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IBK기업은행만 놓고 보면, 기술신용평가 담당 6개 TCB기관(나이스디앤비·NICE평가정보·서울평가정보·이크레더블·한국기술신용평가·한국평가데이터)에 의뢰한 평가 건수(수수료)는 2023년 7만5080건(139억원 상당) 이후 매년 늘었다고 한다.

은행들이 이 위험한 상품을 그냥 놔 버리거나 당국의 압박에도 하는 시늉만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백년대계'라는 대의에 이 짐을 놔버리지 않고 계속 취급을 열심히 했다. 그 와중에 꾸준히 위험회피를 위해 신용심사 수수료도 투자하면서 나름대로 분투했다는 뜻이다. 

"이게 없으면 기술력만 있는 유망 기업들은 정말 어려워지는데 물꼬를 지금 틔워놓은 상태이고 그 중 많은 부분을 기업은행 창구에서 해준다"고 다른 은행 관계자까지 말한다. 당국 평가에 따르면, 초격차 기업은행 뒤를 이은 2등은 NH농협은행이다. 넓게 봤을 때 일반 시중은행 아닌 국책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는 곳들만 매진하는 모습이다. 9월 26일 금융위원회가 이 기술금융 관련 테크평가 발표를 내놨는데, 기업과 농협이 호평받았다. 어쩌면 가을 내내 축제 분위기였을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바로 뒤따라 이달 초 이 의원 지적이 나왔고 분위기는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일반 시중은행원들 쪽에서 안타깝다는 말이 나왔다(본지 10월 2일 기사:  <이양수 의원 지나친 기업은행 때리기...기술금융대출 부실 논란에 업계 우려> 참조). 

기우지만, 후에 이 일의 여파로 중국이나 대만 중소기업들의 약진 소식과 비교해 가며 우리나라 기술 벤처들을 그때 왜 안 키워줬느냐고 탄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12년 전 국정감사 지적 한 번 이후 칭송에는 너무 인색했던 일이 금 보유 정책 포기의 나비효과를 불렀다면 지나친 비판일까. 기술금융을 아는 은행원들에게도 질책과 감시만이 아닌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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