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투자 방식 놓고 美와 의견 차 좁혀
선불 요구→단계적 투자로 외환 시장 충격 최소화
이달 말 APEC 정상회의 계기 최종 타결 목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긱)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 회담을 하며 기자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공동취재]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긱)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 회담을 하며 기자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공동취재]

평행선을 달리던 한미 관세 협상이 막판 접점을 찾으면서 타결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9일 방미 일정을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번 방미 협의에서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며 "방미 전보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정상 회의를 계기로 한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취재진에게 "여전히 조율이 필요한 남은 쟁점이 한두 가지 있다"면서도 협상의 진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방미에는 김 실장을 비롯해 구윤철 경제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총출동해 미국 정부와 집중적 협상을 벌였다.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이다. 김 실장은 지난 16일(이하 현지 시각) 워싱턴DC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2시간 넘게 회담을 진행했다. 

미국은 그간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의 선불·직접 투자를 요구해왔다. 일본과 합의한 것처럼 '투자 백지수표'를 달라는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선정하면 한국이 45일 안에 특수목적법인(SPV)에 투자금을 입금하는 방식이다. 3500억 달러는 한국 지난해 국내 총생산(GDP)의 20% 규모이며, 2026년도 예산안의 약 7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반면, 한국은 외환 시장 불안정 등을 이유로 "선불 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대신 투자 총액은 유지하면서 직접 투자 규모를 줄이고 투자 기간을 분산하는 '할부' 방식을 미국에 제안했다. 직접 투자 대신 보증·대출을 늘리는 방안과 외환 시장 충격이 없는 원화 투자 방식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국은 대미 투자에서 지분 투자(equity)는 5% 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보증(credit guarantees) 또는 대출(loans)로 채우려고 했다. 앞서 일본도 협상 체결 당시 "직접 투자 비중은 1~2%"를 내세운 바 있다.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막판 협상을 벌이고 돌아온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뉴스1]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막판 협상을 벌이고 돌아온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뉴스1] 

구윤철 부총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 중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을 만나 우려를 전달했다. 구 부총리는 지난 16일 "베선트 장관에게 선불로 하기는 어렵다고 설득했고, 베선트 장관은 그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도 "대한민국 외환 시장에 미치는 충격에 대해 충분히 미국에서 인지하고 있다"며 양국 간 이해의 폭이 넓어졌음을 시사했다.

정부는 이번 방미에서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투자 부담 능력 제한을 강조하기 위한 협상 전략 차원이었다.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는 연방정부가 아닌 연방준비제도(Fed)의 권한이며, Fed가 비기축통화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적은 없다.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계적 투자를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구 부총리는 17일 특파원단에게 "실무 장관은 이해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는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 실장은 한두 가지 쟁점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부 안팎에선 '직접 투자 규모'와 '상업적 합리성' 차원의 투자처 선정 방식 등을 여전히 견해차를 있는 주제로 보고 있다. 김 실장은 "한·미 양국 간 상호 호혜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최종 협상안이 돼야한다는 데 대해선 상당 부분 미국 측의 이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달 말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협상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계기로 오는 29~30일 방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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