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산 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칼국수집이 있다. 일산의 명물로 통하는 '일산칼국수'다. 정발산동에 위치한 이 노란색 건물의 칼국수집은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로 연일 북적인다.
지난 1982년 작은 국숫집으로 시작해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쌓아온 노포. 일산칼국수 본점은 단 하나의 메뉴로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과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이 집 칼국수 맛을 보면 다른 곳으로는 이사도 못 간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오랜 단골들에게 이곳은 추억과 위안의 공간이다.

◇ 일산의 별미가 된 닭칼국수의 원조
생각해보면 소고기나 사골 등으로 육수를 낸 깊은 맛의 '사골칼국수'나, 해산물 육수를 사용하는 '바지락 칼국수', '해물 칼국수' 같은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은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닭칼국수'는 잘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크게는 가격 포지셔닝의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삼계탕, 백숙 등 닭을 이용한 탕 요리들이 흔히 사랑받고 있는데, 위 요리들의 가격은 일반적인 식사류의 가격대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칼국수'라는 요리는 한국에서 저렴한 분식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요리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재료비에 비해서 '단가'가 안나온다는 거다. 또 한국에는 '닭 한마리'라는 요리가 있어, 조각 낸 닭고기를 먼저 즐기고, 이후에 그 육수에 칼국수를 끓여 코스처럼 먹는 것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에, '닭칼국수' 단독 메뉴의 필요성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닭칼국수 취급하는 집이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도 유독 독특한 지역이 바로 '일산'이다. 그 중심에는 일산칼국수의 성공이 있다. 이 집의 닭칼국수를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닭칼국수가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고. 진하게 우러난 닭 육수는 그야말로 감칠맛이 폭발하는 듯한 맛. 그 맛의 위력은 대단해서, 지역 곳곳에 닭칼국수를 취급하는 집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집의 뛰어난 맛이 지역 전체의 음식 문화를 바꿔놓은 것이다. 이제 일산에서 닭칼국수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오히려 이 동네를 대표하는 별미가 됐다.

◇ 닭과 바지락이 빚어낸 완벽한 하모니
메뉴는 오로지 '닭칼국수'하나. 군더더기 없는 메뉴판을 볼 때마다 이 집의 자부심과 고집이 엿보이는 듯하다. 넉넉하게 담아 내어오는 닭칼국수 한 그릇에는 뽀얀 국물과 윤기 나는 면발, 큼직하게 찢은 닭 살코기와 바지락 몇 알이 들어있다. 한 입 맛보면 닭 특유의 진한 풍미에 해물 육수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국물 한 숟갈에 감칠맛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잡내라고는 전혀 없이 깔끔하면서도 진국이라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절로 감탄이 나오는 맛이다. 비결은 바로 닭 삶은 육수와 바지락 삶은 육수, 채소 삶은 육수, 닭 뼈 고은 육수를 블렌딩하는 것에 있다. 이것이 바로 구수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명품 육수의 비법이다.
또 하나의 주재료인 면발은 직접 밀가루 반죽을 통해 뽑아 썰어내어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다 먹을때까지 불지 않고 탱글한데, 먹으면 먹을수록 면에 국물이 배어들면서 더욱 맛이 좋아진다. 먼저 진득한 육수와 쫄깃한 면을 그 자체로 즐기다가, 김치를 얹어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집에서 내주는 찬은 오직 빨갛게 버무린 배추 겉절이 하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삭하게 절여낸 김치는 마늘 양념이 듬뿍 배어 있어 향부터 남다르고, 푸릇하고 칼칼한 맛이 갓 끓여낸 국물과 찰떡같은 궁합을 자랑한다. 면을 한 젓가락 집어 들고 그 위에 김치를 척 올려 함께 먹으면, 뜨끈한 국물과 알싸한 김치가 만나 입안 가득 조화로운 풍미가 펼쳐진다. 김치는 큰 통에 담겨 나오는데, 직접 집게와 가위로 먹을 만큼 척척 잘라먹는 재미도 있다. 많은 손님들이 김치를 따로 살 수 없냐고 물어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판매는 안한다. 하루에 겉절이 김치만 100포기 넘게 담근다니 이집 국수와 김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국수를 반쯤 먹고 나면 다진 양념장을 한 스푼 떠 넣어 살짝 매운맛을 더해보자. 국물의 풍미가 한층 살아나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 단골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다. 면을 다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따끈한 공깃밥을 말아 김치와 함께 개운하게 마무리하는 손님도 많다. 감칠맛 넘치는 칼국수 국물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 맛을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든다.

◇ 국수 한 그릇이 가져다주는 삶의 여백
일산칼국수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82년 작은 판잣집 같은 국수 가게로 문을 열었을 당시에는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밀가루 국수를 쌀밥 못지않게 귀하게 여기던 시절, 1대 사장인 황경순 여사는 직접 면을 뽑고 닭으로 국물을 내는 독특한 칼국수를 선뵀다. 당시 칼국수라 하면 멸치 육수나 바지락 칼국수가 흔했지만, 이 집은 닭국물을 기반으로 한 칼국수를 선봬며 손님들의 이목을 끌었다.
푹 삶은 닭에서 우러난 깊은 맛에 바지락의 감칠맛을 슬쩍 보태 개운함까지 잡은 국물은 금세 입소문을 탔고, 인근 주민들은 뜨끈한 한 그릇 하러 단골이 돼 몰려들었다. 그렇게 작은 칼국숫집에서 시작해 지금은 직접 건물을 세울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고, 그 사이 일산의 풍경은 변했어도 이 집 맛만은 한결같았다. 일산 신도시가 개발돼 주변에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수많은 식당이 생겼지만, 일산칼국수는 오로지 단일 메뉴로 정면 승부하며 이름을 지켜왔다.

'일산칼국수'라는 이름은 지명인 탓에 가게 이름을 누구나 쓸 수 있어 이름과 음식을 비슷하게 따라한 식당들도 더러 생겨났다. 이게 일산 지역에서 닭칼국수 집이 왕왕 있는 까닭이다. 다만 일산칼국수 본점에서는 별도의 분점 없이 본점 하나만을 고집해오고 있다고. TV나 유튜브의 미식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돼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려한 간판 광고 하나 없이도 오직 맛과 입소문의 힘으로 성장해온 일산칼국수는 오래된 노포들이 그렇듯, 음식에 대한 장인 정신과 손님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를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달라진 도시 풍경 속에서도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며 변치 않는 맛을 내어온 이곳은, 단순히 배만 채우는 식당이 아니라 세월의 맛을 담아내는 삶의 한 풍경이다. 이런 오래된 맛집 한 곳이 주는 힘은 우리의 마음까지 채워주는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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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 일산칼국수
▲ 주소: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경의로 467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매일 10:00 - 20:00
▲ 추천메뉴와 가격: 닭칼국수 1만원
▲ 식신 'unikim'님의 리뷰: 줄서서 먹을 이유가 있을까 했는데 먹고 나니 가끔 생각나는 메뉴입니다 김치도 국물도 시원하면서 진하고 땡기는 맛입니다 줄은 서지만 또 가고 싶네요

/안병익 식신 대표이사
2022~2024년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2017.07.~2022년 5월. 한국푸드테크협회 협회장
2010년 5월~식신 대표이사
2015년~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
2012~2019년 중앙대학교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2010~2017년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