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판매사, 투자자 '본인 책임' 원칙 저버린 자율배상안 전폭 수용
투자자 손실 만회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막대한 과징금 폭탄 예고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둘러싼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콩H지수 급락으로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 대해 금융당국이 이례적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대명제를 사실상 깨뜨리며 이른바 '자율배상'이란 명목으로 ELS를 판매했던 은행들이 투자자 손실을 보존한 상황이지만,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과징금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은행마다 적극적인 배상 노력을 기울인 상황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피해액을 문제 삼아 수조원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가 자칫 이중처벌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을 낳고 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이 문제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활약으로 일찍부터 소비자에 대한 상당 부분 보상으로 처리 가닥이 잡혔다. 지난해 5월 금감원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해당 ELS 판매 5개 은행에 대한 조정안을 제시했다. 분조위는 이들에 대한 모범 조정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5개 사례를 분석, 조정안을 내놨다. 이 제도는 금융소비자가 금융기관을 상대로 제기하는 분쟁조정 기구로, 양측의 분쟁이 소송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합의를 유도한다. 법원에 가지 않고 일부지만 빠른 손실 충족과 사건 종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분조위 결과, 농협은행의 배상비율이 65%로 나왔고 그 뒤를 국민은행(60%), 신한은행(55%), SC제일은행(55%) 등이 차지했다. 하나은행의 배상비율은 30%로 가장 낮았다.

한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이 서류를 검토받고 있다. 홍콩 ELS 문제가 과징금 검토 단계로 넘어간 가운데, 불완전판매 논의로 금융권에 대한 마녀사냥을 지나치게 하는 건 문제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과 과징금을 함께 강요하는 건 지나치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사진=파이낸셜포스트 사진DB]
한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이 서류를 검토받고 있다. 홍콩 ELS 문제가 과징금 검토 단계로 넘어간 가운데, 불완전판매 논의로 금융권에 대한 마녀사냥을 지나치게 하는 건 문제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과 과징금을 함께 강요하는 건 지나치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사진=파이낸셜포스트 사진DB]

하지만 소비자나 해당 금융기관이 금감원의 조정안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니다. 분조위의 배상비율은 기본배상비율에 '투자자별 가감점'을 고려해 산정된다. 분조위는 5개 은행별로 모든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설명의무 위반 사항과 개별 사례에서 확인된 적합성 원칙 및 부당권유 금지 위반사항을 종합해 기본 배상비율을 산정했다. 여기에 예적금 가입목적 등 고려사항('가산 요인')과 ELS 투자경험, 매입·수익규모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차감 요인'을 두루 감안, 최종 배상 비율을 제시했고, 이를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수용했다.

다만 워낙 많은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제시한 조정안 역시 모두가 만족하는 안은 아니었고, 이렇다 보니 일부 투자자는 개인적으로 소송에 나서는 등 일부 잡음은 계속 불거졌지만, 시장에서는 대체로 은행권이 자율배상에 나서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은행권으로서는 두 번째 시련의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4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이다. ELS 판매 은행 한 곳 당 평균 8000억원에 달하고, ELS 판매액을 기준으로 나누면 특정 은행은 조단위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은행으로서는 법적인 다툼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을 금융당국 압박에 전폭적으로 수용해 막대한 배상금을 토한 상황에서, 이번엔 과징금으로 그보다 더 큰 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서면서 투자자 손실을 일부 만회하는데 힘을 쏟은 만큼 과징금 수준은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과징금을 대폭 경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 이는 홍콩 ELS 사태로 인한 투자자 손실에 대해 일부 투자자가 법원을 통해 피해 회복을 주장했지만, 법원이 은행 손을 들어준 판결이 최근 나왔기 때문이다. 해당 판결은 1심인터러 향후 항소, 항고심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법원이 여전히 '투자자의 책임'을 투자 원칙으로 강조한 만큼 같은 유사 소송에 미치는 영향을 적지 않을 것으로 법조계는 판단한다. 또, 해당 판결이 ELS 판매 은행의 책임에 대해 법원이 일정 정도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과징금 역시 조정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과징금과 분조위 조정안(배상안)은 결이 다른데, 사실상 당국은 이를 혼용하며 제재를 가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며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조정안이 먼저 나오고 과징금이 결정되는 데, 당국이 사실상 문제를 빚은 금융회사 '응징'의 도구로 함께 인식·사용하거나, 나중에는 제도의 출발점이나 의도와 달리 '당근'을 주는 쪽으로 종합적으로 조정해 활용한다는 지적이다.

사실 상 '이중처벌'이라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자꾸 대형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 금감원이 두더지 잡기 식으로 처방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짚었다. 조 원장은 또 "대형 불완전판매 등 사고가 날 때에는 문제의 상품이 갑자기 너무 많이 팔린다든지 '선제적 조짐'이 분명 있게 마련인데, 당국에서 미스터리 쇼핑 등 감시 제도 가동을 현실성 있게 하지 않고 사후에 문제가 터지면 분조위를 가동하고 또 과징금을 부과하고 하는 걸 해결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질책했다. 이와 함께 "분조위 조정안은 사실 구체적으로 사안마다 잘잘못을 알아야 법원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확한 피해액이 산정이 가능지만, 선제적으로 분조위를 하는 건 소비자가 긴 소송 과정에 지칠 가능성 등을 고려하는 것"이라면서 그 자체가 완전무결한 게 아님을 강조했다. 일단 여론을 등에 업고 당국이 지나치게 분조위 조정 배상부분을 정하거나, 그에 더해 과징금을 당연시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은행권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이상권 전(前) 서민금융연구포럼 부회장도 "배상 조정안을 먼저 제시한 뒤 과징금까지 크게 부과하는 건 금융권의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부회장은 특히 이번 홍콩 ELS 건처럼 여론의 질타를 강하게 받고 1년여가 흐른 후 4조원대 과징금 부과설까지 퍼지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은행들로서는 맘이 편치 않을 것이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석하고, "(언젠가부터) 불완전판매라고 몰아세우면 변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라며 "과징금 과다 부과만큼은 지양해야 한다"는 당부를 내놨다.

분조위 배상 조정과 과징금이 기본적으로 출발점이 다른 만큼, 이를 과잉 처벌 혹은 이중처벌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지나친 부담과 여론재판식 처벌이 되지 않도록 현재의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분조위든 과징금 판단 기준이든 간에 법과 관련된 인사들보다는 경제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더 비중있게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면서 종합적인 관점과 차원에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금감원에서도 현재 홍콩 ELS 과징금 이슈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4조원 부과 규모 추산을 당초 내놓거나, 이것을 법원 재판 등을 일부 고려해 상당 부분 줄여줄 것이라는 선심성 조치 논란 우려에 선을 그으려는 모습이다. 금감원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금융위원회 등의 최종 조율을 거쳐 확정된다"며 "보도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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