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저문 저녁이면 숯불 연기가 은은히 퍼져나가는 골목이 있다. 삼삼오오 모여 식사와 수다를 즐기는 손님들의 목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를 따라 가면 고깃집들이 모인 골목길 중에서도 가장 북적이는 이 집을 만날 수 있다. 오랜만에 찾은 저녁에도 자리마다 숯불 위로 고기 굽는 연기가 가득한 곳. 지난 1992년 문을 연 이후 어느덧 30년 세월을 간직한 분당의 노포 '홍박사생고기'다.

◇ 백탄 숯불에 구워낸 한우의 풍미
고깃집치고 홍박사 생고기의 메인 메뉴는 아주 단출하다. 보통 부위별로 맛볼 수 있는 일반 식당과는 달리 이곳은 한우 등심과 갈비살, 생고기라 부르는 육회가 전부다. 시그니처는 바로 '갈비살'. 한 근 단위로 주문이 가능한데, 주문을 마치면 곧 커다란 쟁반에 담겨 나오는 고기가 시선을 압도한다. 선홍빛 살코기 결 사이로 하얀 마블링이 촘촘히 박혀있어 한 눈에 봐도 좋은 퀄리티의 선도 좋은 고기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숯불은 값비싼 백탄 참숯을 사용해 화력이 강하면서도 연기가 적은데, 덕분에 센 불에 겉만 빠르게 익혀도 속은 촉촉한 육즙을 그대로 간직한다. 실제로 달궈진 숯불 석쇠 위에 두툼한 고기를 올려 한쪽 면이 살짝 그을리면 곧바로 뒤집어 굽는데, 겉만 아삭하게 익었을 때 먹는 것이 이 집 고기의 베스트 포인트다.
첫 점은 아무 양념도 찍지 않고 소금만 살짝 곁들여 한우 본연의 풍미를 음미하는 것을 추천한다. 적당한 두께로 잘 익은 갈비살은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와 혀끝을 적신다. 부드러운 결 따라 육즙과 함께 녹아내리는 살코기에는 고소한 지방의 풍미와 진한 한우 특유의 육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은근히 밴 숯 향까지 더해져 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니 함께 간 일행들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맛이 난다. 역시 질 좋은 한우는 소금만 살짝 찍어 먹을 때 가장 맛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홍박사생고기의 고기가 여실히 증명해준다.

또 다른 인기 메뉴인 등심도 발군의 맛이다. 커다란 등심 그대로를 먼저 보여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는 모습에서 신선함과 신뢰가 느껴진다. 이집 고기맛은 공통적으로 쫄깃하면서도 연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이 특징인데, 이는 신선한 한우를 일정 기간 저온 숙성해 육질을 부드럽게 관리한 덕분이라고. 숯불에 직접 구워낸 고기는 은은한 불향이 배어 더욱 고소하게 느껴지고, 살짝 탄 부분의 견과류 같은 향까지 입혀져 한우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이집의 고기 퀄리티를 알아볼 수 있는 메뉴가 바로 '생고기'다. 이는 한우 육회를 뜻하는데, 아무 양념 없이 생고기를 채 썰어 내어주는 요리다. 일반적으로 살짝 마늘과 참기름에 양념하거나 고추장 양념을 버무리는 것과는 달리 생고기 자체를 내어 놓는 것은 고기 자체의 맛의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고기를 들여오는 날이기 때문에 그날 방문하면 더 신선한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것이 단골의 팁이다. 또한 메뉴판엔 없는 단골들의 히든 메뉴로 '안창살'이 있는데, 2주 전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아무쪼록 홍박사생고기의 좋은 고기는 아무 양념 없이 그대로 구워 먹어도 맛이 좋고, 함께 내어주는 쌈 채소에 마늘, 파절임, 양배추 절임과 함께 맛을 바꾸어 가면 물리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600g씩 파는 푸짐한 양도 이 집의 미덕이다. 실제 체감상 다른 고깃집보다 양이 많은 느낌이라서 일행과 배불리 먹고도 고기가 남을 정도인데, 넉넉히 구워가며 천천히 한우의 참맛을 느끼기 좋다.

◇ 냉면과 된장찌개, 이어지는 별미들
노포의 한우구이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식사의 마무리다. 진한 고기 맛을 본 뒤 입가심 겸 속을 달래주는 메뉴로 이 집에서는 냉면과 된장찌개를 빼놓지 않고 찾게 된다. 불판 가득 구워낸 고기를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주문하는 냉면 한 그릇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별미다. 특히 불향 어린 고기 맛 뒤에 오는 시원한 육수 냉면은 그 대비 덕분에 더 상쾌하게 느껴진다. 이 집의 냉면은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매콤달콤한 함흥식 비빔냉면이든 시원 담백한 물냉면이든 둘 다 손님들 반응이 좋다. 특히 물냉면은 시판 육수의 새콤달콤한 맛에 비해서 꽤나 슴슴한 편인데, 때문에 맛이 한결 고급스러우면서도 어린 아이에게도 먹이기 좋다.
한편, 따끈한 된장찌개도 빠질 수 없는 별미다. 묵직한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나오는 된장찌개는 식사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메뉴다. 이집 된장찌개는 특별한 비법을 내세우기보다는 집된장의 투박하고 깊은 맛을 살린 옛날식 스타일. 감칠맛 나는 국물에 야들야들한 두부와 애호박, 감자, 고기 자투리 등의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 있어 술술 넘어간다. 된장찌개는 인기가 많아 사이즈도 구분해서 주문할 수 있는 것이 특징. 밥에 된장을 말아 반찬으로 나오는 시원한 맛의 무생채와 함께 떠먹거나 남은 고기 한 점을 얹어 먹으면 환상의 조합이다.

◇ 30년 지켜온 맛 역사와 철학
지난 1990년대 초반, 분당 신도시가 개발되던 시기에 이 작은 고깃집을 열면서 내건 철학은 단순했다. "누구나 우리의 한우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현재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홍의창 대표는 아버지의 이 신념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좋은 한우를 가능한 한 저렴하게 공급해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마음가짐 덕분에, 이 집은 초창기부터 가성비 좋은 한우 맛집으로 입소문을 탔다. 실제 이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 퀄리티의 한우를 이 가격에'라는 말을 자주 올린다.
맛, 가격, 퀄리티를 지켜온 신념을 알아봐준 손님들 덕에 본점을 이어 인근 신관, 경기 용인, 서울 강남 한복판에도 분점을 열며 30년 한우 노포의 명성을 도심까지 이어가고 있다. 규모는 커졌지만, "베풀 수 없는 장사는 성공할 수 없다"는 가게의 신념은 여전히 모든 지점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실제 홍박사생고기는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한우 물량을 소화하면서도, 높은 재방문율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번 다녀간 손님은 단골이 되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세월이 쌓은 신뢰의 맛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서 한우구이를 지켜온 전통과, 누구나 질 좋은 고기를 즐기게 하겠다는 홍박사만의 철학이 오늘날까지 이 식당을 굳건하게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번듯한 프랜차이즈 고깃집이 즐비한 신도시 한복판에서도, 30년 세월의 연기가 밴 숯불 냄새와 넉넉한 인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둔다. 이것은 단순한 고기의 맛이 아니라, 세월과 정성 그리고 인심의 맛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담백하고 진솔한 이 한우구이 한 점에는, 지난 세월 이 식당을 지켜온 사람들의 땀과 철학이 배어 있다. 밤공기에 실려 퍼지는 은은한 숯 향처럼, 홍박사생고기에서의 식사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 상호: 홍박사생고기
▲ 주소: 경기 성남시 분당구 양현로 447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 추천메뉴와 가격: 한우생갈비살(600g) 12만원, 한우생등심(600g) 10만6000원, 된장찌개(대) 1만원
▲ 식신 '트윙트위윙'님의 리뷰: 분당에서 제일 맛있는 한우 구이집 중 하나입니다. 가격도 다른데에 비해 조금 저렴한 편이고 된장도 맛있어요! 주말에는 빨리 안가면 갈비살은 다떨어진답니다.

/ 안병익 식신 대표
2022~2024년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2017.07.~2022년 5월. 한국푸드테크협회 협회장
2010년 5월~식신 대표이사
2015년~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
2012~2019년 중앙대학교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2010~2017년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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