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세계 경제는 지정학적 위험과 경제 정책 역풍 속에서 성장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들은 외부 여건에 대응 및 적응하면서 인공지능(AI) 투자를 중심으로 첨단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내수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 대응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경제는 대외 불확실성과 교역 환경 악화에 따른 외수 및 투자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내수가 회복됨에 따라, 위축되던 건설투자가 증가세로 전환하면서 2026년에는 잠재성장률 부근까지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사전 주요 행사로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린 'APEC CEO Summit Korea 2025'에 21개국 APEC 회원경제체와 글로벌 기업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 협력 전략을 모색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하고 세계 최대 회계·컨설팅사인 딜로이트(Deloitte)가 공식 지식 파트너로 참여한 이번 서밋에 참석한 기업들은 2025년 세계 경제는 '견조한 회복'과 '내부 자신감'이 공존했다고 평가했다.
딜로이트가 실시한 'APEC CEO Survey 2025'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7명(70%)은 자사 실적 전망에 대해 낙관했지만,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45%만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는 CEO들이 내부 혁신과 효율성 강화에 대한 자신감은 높지만, 지정학적 위험·금리·물가 등 외부 변수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1. 성장 둔화 vs 회복 탄력성
2025년 세계 경제는 지정학적 위험과 무역 갈등 고조 속에서 예상보다 강한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관세 전쟁의 충격은 조기 선적 및 재고 축적, 각국의 무역 협상 노력과 미국 달러화 가치의 하향 안정세를 통해 완화됐다. 또한 AI에 대한 낙관론은 관련 투자 붐과 주식시장의 강세를 이끌어 내면서 여타 부문의 투자 부진을 상쇄하고 소비지출 둔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아시아태평양 수출 경제도 완만하지만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주요국 GDP 성장률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고, 인플레이션도 통제 가능한 수준을 보였다. 특히 금융시장과 기업 활동의 활력이 회복된 점이 두드러진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4000선을 돌파하며 올들어 70% 넘게 상승하는 등 전 세계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고 일본과 대만의 주가지수도 30% 넘게 오르며 각각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홍콩 증시는 기업공개(IPO)의 재개와 거래량 급증으로 항셍지수가 연초 대비 31% 상승했고, 중국 상해종합주가지수도 20% 넘게 오르며 연고점을 돌파했다. 일본은 1분기 인수합병(M&A) 규모가 전년 대비 276% 급증한 23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주요 기관들의 성장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 성장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은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고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관세 인상을 앞두고 기업과 가계가 사전 구매를 서둘렀고 관세 실행 중단과 협상을 통해 불확실성이 감소하면서 경제 활동이 예상보다 활발했지만, 관세 자체는 장기적인 저성장 요인이다.
키워드 2. 불확실성과 투자 부진 vs AI 열풍
주요 선진국의 기업 투자는 금융 위기와 팬데믹 이후 추세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국내총생산(GDP) 대비 2.5%에 달했던 선진국 경제의 순투자는 팬데믹 충격까지 더해지며 1.6% 수준까지 떨어졌다.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으면 기업 투자는 줄어든다. 글로벌 수요, 규제, 무역 정책 전망이 불확실할 때 기업은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의 투자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신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2%와 3.1%로 제시했다. 이는 연초에 비해 두 차례 상향 수정된 것이지만, 지난 2024년 3.3%나 팬데믹 이전 평균인 3.7%보다 훨씬 낮은 성장률이다. 2026년을 앞둔 주요국 경제는 여전히 부진한 경제 성과 속에서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불안 위험에 노출돼ㅑ 있다.
믿을 구석인 AI 투자는 내년까지 성장 국면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AI 기술의 수익화를 시도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AI 산업은 현재 거품이 아니라 펀더멘털에 입각한 호황으로 평가되지만,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거나 금융시장의 고평가 부담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화된다면 현재의 순풍은 역풍으로 돌변할 것이다. 실적 전망, 기술 발전, 지정학적 상황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AI에 대한 낙관주의와 신중함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키워드 3. 보호무역 vs 긴장 완화
지정학적 불안과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한 도전은 각국의 재정 및 통화 정책의 근본적인 제약을 드러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계속해서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세계 경제와 안보의 재균형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지정학적 불안의 지속은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고 세계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추가적인 관세 인상이나 수출 제한, 후속 제재 등 극단적인 협상 전략은 경제적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이러한 여건은 정책적 실수나 기능 마비의 위험을 높이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도 높아진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관세 발효 전 재고 비축과 AI 투자 붐으로 인한 무역 증대 효과가 관세 전쟁의 충격파를 줄였지만, 내년 교역 전망은 올해보다 더 어두우며 시스템의 회복력이 지속될지 의문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무역 및 안보 정책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 파트너로부터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내고 동맹국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는 각국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거나 별도의 연합 및 동맹을 구축하도록 하여 지리경제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있다.
가자지구 분쟁 종식을 위한 합의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시도로 지정학적인 긴장이 완화되고 국제 유가가 하락한 것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됐다. 세계은행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세계 경제 둔화와 석유 공급 초과로 인해 글로벌 상품 가격은 2026년에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 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 경제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다만 지정학적 긴장과 갈등이 다시 심화될 경우 국제유가는 반등하고 금과 은과 같은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또한 AI의 급속한 확산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는 에너지 가격뿐만 아니라 AI 인프라에 필수적인 알루미늄, 구리와 같은 비철금속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키워드 4. 금리 인하 vs 부채 위험
내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국 금리가 계속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측 불가능한 미국의 관세 부과의 충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부담이다. 올해 2%, 내년 2.1%로 예상되는 미국 경제 성장률이 보여주는 탄력성은 새로운 연방준비제도 지도부의 금리 인하 능력을 시험대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물가 상승률이 다시 3%를 넘어서는 것은 관세 인상이 최종재에 미치는 영향이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불길한 기운을 드리운다.
미국의 금리 인하와 달러화의 안정은 세계적으로 우호적인 금융 여건을 형성하고 정책적인 여유를 제공했다. 그러나 재정 적자와 부채 증가 추세로 인한 금리 상승 압력이 상존하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완화정책 기조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불안감, 무역 전쟁의 불확실성과 경제 성장 둔화는 투자자들의 금리 변동 위험 감수에 대한 대가 요구, 즉 기간 프리미엄 확대를 통한 장기 금리의 상승을 이끌고 있다. 이것이 또다른 경제의 역풍 요인이다.
키워드 5. 복합적 도전 vs 다층적 리더십
내년에도 주요국 경제는 더욱 다양하고 효율적인 생산을 촉진하고, 기술과 혁신에 투자하고, 데이터 투명성을 개선하고, 시장 기반 가격 책정을 장려하여 가격 변동성에 대한 장기적인 회복력을 구축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기업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무역 및 안보 질서의 재편에 따라 부상하는 새로운 변화와 지경학적 분절화에 따른 변수에 실시간으로 적응하기 위한 대응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비드 힐(David Hill) 딜로이트 아시아퍼시픽 CEO는 "지금의 리더십은 어느 때보다 복잡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우리는 비용 절감과 성장을 동시에 요구받고, 경쟁력을 유지한 채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해야 하며, 신뢰를 훼손하지 않고 AI를 활용하고, 변화를 추진하면서도 수익성을 지켜야 한다. 마치 비행 중인 항공기의 엔진을 교체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통찰력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성장과 절감, 혁신과 신뢰, 전환과 수익성이라는 상충되는 과제들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다층적 리더십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단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이 동시에 직면한 공통 과제임을 일깨운다.

/ 김사헌 딜로이트인사이트 이사
전 뉴스핌통신 기자(국제/산업2부/증권/IB금융 부장)
전 민간 싱크탱크 책임연구원, 1금융권 뱅커 등 역임
